갈등이란 단어를 들으면 일단 부정적인 이미지부터 떠올라요. 상대방과 나쁜 얘기가 오가고, 감정적으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대체로 갈등에 대한 이미지는 좋을 수가 없죠.
웬만하면 없는 게 나은, 있어도 최소화시키는 게 좋은, 이런 게 우리가 가진 갈등에 대한 이미지예요.
그런데 갈등은 장기 연애에서 필요악 같은 존재예요. 물론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갈등, 피해가야 할 갈등도 있지만, 연인 사이에는 피해가면 안 되는, 오히려 있어야만 하는, 피해갈수록 오히려 손해를 보는 갈등도 존재해요.
오히려 아예 갈등이 없는 커플들을 보면 어떤 경우가 많냐면, 서로 대화를 통해 이견을 좁힐 수 있는 경우에도 갈등을 피하면서 “이 사람은 그냥 이런 사람이구나”, “나랑 차이가 큰 사람이네”, “같이 미래를 보긴 어렵겠다” 이렇게 생각해요.
이렇게 거리감이 있는 관계를 유지하면서 나 혼자 잠정적으로 상대방을 재단한 뒤에, 결정적인 순간에는 함께 미래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요.
반대로 관계 초기에는 빈번하게 갈등을 겪지만, 그 갈등을 잘 이겨내면서 서로에게 최적화되어 가는 커플들은 갈등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관계가 깊어지는 경험을 하게 돼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갈등은, 제대로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오히려 상대방과 내 관계를 더 깊어지게 만드는 매몰비용의 역할을 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을 만나도 갈등이 생기고 이견을 좁히기가 쉽지 않은데, 나와는 이미 그런 갈등을 잘 이겨내며 신뢰가 쌓인 관계가 이 갈등을 통해 만들어지는 거죠.
그래서 연인 갈등은 무조건 두려워하고 피해야 할 문제가 아니에요. 오히려 관점을 바꿔서, 반드시 일정한 수준과 빈도로 나타나야 하고, 그 과정을 통해 관계를 깊어지게 만들어야 하는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갈등의 해결이란 상대방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과정이다.
그럼 이번엔 우리가 갈등 상황에서 하는 생각부터 가볍게 정리해볼게요.
“저 사람의 행동 배경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에게 감정적인 불쾌감을 책임지게 만들려고 하는구나.”,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구나.”, “내 요구를 받아들이게 만들고 싶다.”
이렇게 우리는 갈등 상황에 놓이면 선과 악의 구도로 상대방과 대립하게 돼요. 내 요구는 정당하고 타당한 요구인 데 반해, 상대방은 나를 이해하지 않고 내 감정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악처럼 생각하게 되죠.
그래서 대부분의 갈등 상황은 토론의 형식을 띠게 돼요. 내 주장이 얼마나 일리 있고 타당한지 주장하며 상대방에게 내 의견을 받아들이게 만들려고 하죠.
그리고 이 과정이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관계에 대한 협박을 하거나, 상대방을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치부하거나, 관계에 소홀한 사람이란 프레임에 가두려고 해요.
상대방이 내 요구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별 같은 부정적인 동기부여를 이용해서라도 내 의견을 받아들이게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갈등은 대체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기보단, 한쪽이 대부분 억지로 참고 인내해야 하는 상황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아요. 근데 이런 다짐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아요.
예를 들어서 내가 상대방이 흡연을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래서 논쟁 끝에 상대방에게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내요.
근데 상대방 입장에선 연인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흡연을 하지 않으면서 오는 고통을 이겨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결국 몰래 흡연을 하게 되고, 대부분 한 번은 걸리게 되죠.
그럼 나는 상대방이 흡연을 했다는 사실보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에 꽂혀서 상대방을 질책하게 돼요.
상대방이 왜 흡연을 했는지 이해하려 하기보단, 어떤 이유에서든 나와의 약속을 어겼다는 사실이 얄밉게 느껴지고 아니꼬운 거예요.
그런데 사실 이런 약속 자체가 애당초 지켜질 수가 없는 약속에 가까워요. 상대방에게는 흡연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자기 동기부여가 없으니까요.
여러분 입장에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동기부여가 있는 거 아니냐고 말씀하실 수 있지만, 반대로 우리도 부모님이 하는 요구라고 다 들어줬나요?
사람의 모든 행동은 자신의 행복과 이익을 추구하는 거라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뚜렷하고 와닿지 않는다면 타인의 행복을 위해 희생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까워요.
그래서 애당초 내가 기분이 좋기 위해, 내가 담배 냄새가 맡기 싫으니까, 네가 금연하는 고통을 인내해라, 이런 요구는 이뤄질 수가 없는 요구인 거예요.
그 순간엔 갈등을 끝내기 위해, 스트레스받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내 요구를 들어주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지만, 결국은 지켜지기 어렵다는 거죠.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건, 갈등의 해결이란 상대방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과정이라는 거예요. 내가 상대방에게 다짐이나 약속을 받아내는 행위가 아니라,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요구를 들어주도록 만드는 동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갈등의 목적이에요.
상대방이 내 말 한마디에 껌뻑 죽는 그런 유치한 관계나 바랄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해야 상대방이 내 요구를 들어줄 수 있을지를 고민해봐야 해요. 지금부터 이런 갈등 상황을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드릴게요.
첫 번째, 내 감정을 다른 감정으로 왜곡해서 표현하지 마세요.
연인 갈등은 다른 갈등들과 가장 큰 차이가 한 가지 있어요. 바로 감정이 왜곡되기 쉽다는 거예요.
우리가 겪는 삶에서의 대부분의 갈등들은 실리를 추구해요. 금전적인 문제나 시간의 문제처럼, 갈등을 벌이는 것 자체가 감정적 이익보단 실리적 이익을 위한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연인 간의 갈등은 대개 감정적 이익 때문에 일어나는 갈등이죠. 상대방이 나를 더 신경 썼으면 좋겠다, 나에게 더 헌신적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싫어하는 건 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건 더 했으면 좋겠다.
어떻게 보면 대부분의 연인 간 갈등은 어린아이들의 원초적 욕구를 이루기 위한 목적과 비슷해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한 가지 있어요. 우리는 이미 성인이고, 내 감정적 이익을 내세운다는 게 우리 추구미랑 맞지가 않는 거예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상적인 성인의 모습을, 감정적이기보단 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기보단 논리적이고, 내 감정보단 타인의 감정을 우선시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모습들이 멋지고 성숙해 보이니까요. 이게 우리가 가진 성인으로서의 추구미예요.
그런데 연인 사이에 생기는 문제들을 보면, 우리 추구미에 따라선 대부분 내가 참고 넘어가야 하는 일들이 많아요. 내가 상대방을 이해해야 하고, 내가 조금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고, 내가 그 상황에 대해 양보해야 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연인 간 갈등 상황에선 우리의 추구미와 감정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게 돼요. 내 감정을 대놓고 표현하자니 내가 상대방에게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고, 내가 상대방을 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고, 사랑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물론 평소에는 이런 요구들이 딱히 못 할 요구들도 아니에요. 다만 갈등 상황에선 이런 요구를 대놓고 한다는 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갈등 상황에서 내 감정들을 왜곡하기 시작해요. 서운함을 화로 표현하기도 하고, 내 진짜 걱정을 말하지 않고 다른 이유들로 상대방을 질책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상대방이 말없이 술집에 가서 술을 마셨어요. 사실 내가 걱정되는 건 상대방이 다른 이성과 논 건 아닌지, 바람을 피우려는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닌지, 이런 걱정이 솔직한 속마음일 거예요.
그런데 이런 얘기를 노골적으로 하자니 내가 너무 없어 보이는 것 같고 관계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죠. 그래서 이렇게 말하게 돼요.
“네가 술을 그렇게 마시고 연락이 늦어지면, 기다리는 나는 네가 무슨 일이 생겼을지 걱정되지 않겠어?”
“자리를 이동하면서 왜 말을 안 해? 이건 네가 나랑의 신뢰를 망가뜨리는 거라고 생각 안 해? 그 시간 동안 너 도대체 뭐 했어?”
이렇게 다른 핑계와 이유를 앞세워 상대방에게 해명을 요구하게 되죠. 대놓고 물어보자니 자존심이 상하니까, 다른 이유를 들어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려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내 감정을 바꿔 말하다 보면, 상대방 입장에선 숨이 막히는 일들이 생겨요.
만약 상대방이 술자리에 도착한 뒤에 나에게 자리를 이동했다고 얘기했다고 쳐요. 이건 사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예요.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죠.
심지어 내가 먼저 물어보고 상대방이 대답을 했다고 해도, 타이밍상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지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나한테 숨긴 일이라고 볼 수도 없어요.
그런데 내가 걱정이 돼서 예민해진 상황에서는 이렇게 꼬투리를 잡을 수도 있겠죠. “왜 자리를 이동하기 전에 얘기를 안 해?” 꼬투리를 잡으려면 어떤 상황에서든 잡을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연인 간의 갈등 상황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다른 감정으로 왜곡해서 표현하는 건 갈등을 만드는 지름길이에요.
특히 서운함을 화로 표현하지 마세요. 우리가 서운함을 가장 자존심을 지키며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바로 “분노”예요.
그런데 이 분노에는 반드시 명분이 필요하고, 상대방의 행동에서 그 이유를 찾으려고 할 거예요. 근데 항상 그 명분이 타당할 수는 없다 보니, 상대방 입장에선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내가 말도 안 되는 걸로 화를 낸다, 성격이 이상하다, 별거 아닌 것에 히스테리적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있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편이 좋아요.
“네가 안 그럴 거란 건 아는데, 네가 술자리에 있으니까 자꾸 다른 사람이랑 노는 장면이 상상이 돼. 그런 사람이 아니란 걸 알지만 기분이 좋지가 않아.”
이렇게 있는 그대로 말해버리는 편이 훨씬 나아요. 그래야 상대방도 내가 어떤 걱정을 하는지 알 수 있고, 그 걱정을 먼저 해소해주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생기거든요.
두 번째, 상대방이 왜곡하는 내 행동의 저의를 바로잡아야 해요.
이번에는 입장을 바꿔볼게요. 만약 반대로 우리 행동 때문에 상대방이 갈등을 제기하는 입장이라고 쳐요.
이때 정말 내가 내 이익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한 게 아니라면, 대부분 상대방은 내 저의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나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상대방은 내 행동의 의도를 넘겨짚으면서 기정사실화하고 나를 질책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방금 들었던 예를 들자면, 내가 술자리에서 자리를 이동하면서 상대방에게 미리 얘기하지 않았다고 쳐요. 그러다 상대방에게 연락이 와서 “지금 어디로 이동했어”라고 뒤늦게 말한 상황인 거죠.
우리 입장에선 그냥 상대방과 핑퐁을 주고받다가, 상대방이 답장이 없어서 기다렸다가 연락이 온 타이밍에 얘기했을 거예요.
근데 상대방은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나한테 숨기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을 먼저 안 했나?”, “이 사람은 내가 걱정을 하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나?”
우리 입장에선 억울한 상황일 거예요. 그래서 상대방에게 내가 왜 연락하지 않았는지 일단 설명하려고 하겠죠.
“나는 그냥 네가 답장 오면 얘기하려고 했어.”, “답장이 안 왔는데 먼저 연락하기가 좀 그랬어.”
근데 상대방은 이미 감정이 상한 상태라 이렇게 얘기하겠죠. “내가 답장이 안 와도 그냥 남겨놓으면 되는 거 아니야?”, “평소엔 내가 답장 안 해도 잘 얘기하잖아.”
이미 이해할 생각보단 나를 압박할 마음이 더 강한 거예요. 이럴 때 우리가 해야 할 건, 상대방이 왜곡하고 있는 내 행동의 의도를 바로잡아주는 거예요.
“지금 네가 서운하다는 건 너무 잘 느껴져. 그리고 서운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근데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있으면서 너를 신경 쓰지 않는다거나, 네가 걱정을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인 건 아니야. 계속 연락도 내 나름대로 신경 쓰고 있고, 안심시켜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거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상대방의 행동 저의도 함께 짚어주세요.
“그런데 걱정되는 마음을 화로 표현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충분히 좋게 말해도 나는 네 말을 최대한 들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주면 좋겠어.”
여기서 대부분 실수를 하시는 게, 일단 상대방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하시는데, 미안하다는 말은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처럼 들려요.
물론 어떤 이유에서건 상대방이 걱정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하더라도, 이 말이 나오는 순간 상대방은 내가 잘못을 시인했다고 생각하고 더 감정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아요.
상대방이 내 의도를 왜곡할 때는 먼저 왜곡된 내 행동의 저의를 바로잡아주고, 나아가서 상대방의 현재 태도에 담긴 저의도 함께 짚어서 상대방의 행동을 절제시키세요.
세 번째, 갈등의 목적을 설정해야 해요.
“갈등의 목적.” 이거 정말 중요한 얘기예요. 모든 갈등은 목적이 설정되지 않으면 자존심 싸움, 감정 싸움이 되어버려요. 이건 갈등의 생리상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인간의 본능상 갈등의 주된 목적은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었어요. 내가 상대방보다 더 우월하다는 걸 증명하고, 상대방에게 좌절감을 주는 게 갈등의 원초적이고 가장 기본적인 형태예요.
그런데 연인 간의 갈등은 이런 갈등과는 성질이 다르죠. 연인 사이에서 갈등은 문제 해결적이어야만 해요.
당장 상대방을 굴복시키고 내가 관계에서 우위에 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 계속 관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서로 불편한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주된 목적이에요.
그런데 막상 갈등이 생기는 순간에는 이런 생각들이 사라져요. 당장 상대방과 기싸움에서 이겨야겠고, 상대방을 꼼짝 못 하게 제압해야 속이 시원하고, 자기가 잘못했다는 인정을 받아내고 싶다는 욕구가 앞서게 돼요.
그래서 연인 간의 갈등이 어디 술집에서 술 먹다 생긴 시비처럼 변질되는 거예요.
서로의 논리에 오류를 찾으려 하고, 내가 좀 밀린다 싶으면 과거 얘기 중 반례들을 꺼내오고, 그러다 기분이 나쁘면 비난을 하거나 자리를 회피해버리죠.
이런 상황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갈등의 초입부터 목적을 먼저 상대방에게 설정해줘야 해요.
우리가 왜 지금 이 불편한 감정을 참아내면서까지 이 대화를 해야 하는지, 대화를 나눌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내가 나서서 정의부터 내려줘야 하는 거예요.
“난 오늘 얘기를 하면서 너한테 자존심을 부리거나 나 혼자만 좋자고 얘기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분명히 비슷한 상황을 우리가 또 겪게 될 텐데, 그때마다 서로 감정이 상하고 싶진 않아. 그래서 오늘 네 얘기를 들어보고, 네가 바라는 게 뭔지 내가 바라는 게 뭔지 서로가 이해하고 갔으면 좋겠어.”
이렇게 대화의 가이드부터 잡아줘야 하는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해도, 상대방은 계속 이 대화 범위를 넘어가려고 할 가능성이 높아요. 갈등 대화라는 게 유쾌한 대화가 아니다 보니 말을 하면서 감정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이 대화의 참여자임과 동시에 사회자가 되어야 해요. 상대방이 선을 넘으려고 할 때마다 대화의 목적을 상기시켜주면서, 때로는 달래면서, 상대방이 지금 나에 비해 성숙하지 않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대화를 진행해야 해요.
이런 포지션을 통해 갈등 대화의 질이 달라지기 시작할 거예요.
네 번째, 증명할 수 없는 주장을 할 때는 전제 관계를 얘기하세요.
갈등 상황에서 때로는 우리가 상대방에게 약속을 해야 하는 상황들이 있어요. 실제로 우리가 잘못한 상황도 충분히 있을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 “내가 이렇게 해보겠다.”
근데 상대방은 내가 하는 약속을 신뢰할 수 없다고 얘기해요. “네가 앞으로 안 그럴 거란 걸 내가 어떻게 믿어?”, “그리고 또 그러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건 여러분도 많이 겪어본 상황일 거예요.
그런데 이럴 때 우리가 딱히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미래에 내가 그러지 않겠다”는 말은 사실 상대방이 믿어주지 않으면,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내 입장에서 완벽하게 보증할 수가 없는 말이거든요.
그래서 대부분은 이런 상황에서 “나를 믿어달라”, “그럴 일이 절대 없도록 하겠다” 이런 호소를 하게 돼요. 그런데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전제 관계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상대방이 이런 얘기를 하는 배경에는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는 손해 심리가 깔려 있어요.
“만약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그때 가서 문제가 생기면 나만 손해가 생기는 거 아니야?”, “넌 그때 가서 모른 척하면 되지만, 난 온전히 지금 너를 믿음으로써 손해를 보잖아.” 이렇게 자기만 손해를 본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이 전제 관계에 대해서 얘기함으로써, 나도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어떤 손해를 보는지 손해의 균형을 맞춰주는 거예요.
나에게 우리 관계가 어떤 의미인지, 만약 내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면 나에겐 어떤 손해가 생기는지, 이런 걸 상대방에게 얘기함으로써 혼자 손해를 보는 상황이 아니라는 인지를 시키는 거예요.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너랑 내가 보낸 그 행복한 시간들, 나한테는 너무 의미가 깊은 시간들을 더 이상 누릴 수 없을 거고, 너랑 나랑 쌓은 추억들도 퇴색되겠지. 나는 그런 상황들을 겪고 싶지 않고, 또 너랑 관계에서 이 문제로 더 이상 상처를 만들고 싶지도 않아.”
이 말을 함으로써, 상대방이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서 나도 상대방에 못지않은 손해가 생긴다는 무게의 균형이 맞춰지는 거예요.
다섯 번째, 상대방이 말한 거리감을 반대로 적용하세요.
연애 속 갈등이 어려운 또 한 가지 이유는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다는 거예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틀린 게 아니라 다를 수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나는 연인 사이라면 서로의 개인적인 활동에 대해서도 충분히 개입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상대방이 너무 이성들이 많은 공간, 노골적으로 남녀들이 만나는 장소에 가는 건 충분히 연인으로서 제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이 생각을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런데 반대로 상대방은, 내가 그런 공간에 가서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건 문제가 되지만 그런 공간을 무조건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거예요.
또 아무리 연인 사이라 하더라도 의견을 말할 수 있을 뿐, 내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는 최종적으로 내가 결정할 문제고 연인은 이걸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이것 또한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예요.
이런 문제들은 명확하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어요.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상대방에게 아무리 타당한 논리를 펼치며 얘기하더라도, 상대방 입장에선 여러 가지 이유로 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때 처음에 말한 것처럼 이별이라거나 관계를 위협하는 얘기들을 꺼내게 되는 거죠. 그런데 이럴 때 효과적인 방법은, 상대방이 얘기하는 관계의 거리를 나도 똑같이 적용하는 거예요.
제가 예전 영상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에피소드인데요. 당시 여자친구가 친한 언니 생일파티로 호스트바에 간다고 얘기를 했어요. 그리고 본인은 옆에 아무도 없는 채로 술자리만 즐기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때 여자친구에게 왜 그런 곳에 가냐, 이건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냐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건 나한테 허락을 받을 문제가 아니고 네 시간을 써서 네가 선택할 일이며, 기왕 갈 거라면 즐겁게 다녀왔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대신에 저는 지인들에게 클럽 파티에 초대받아서 그곳에 간다고 얘기했어요.
여기에 많은 여성분들이 상대방보다 더하게 만들어서 못 하게 만드는 일종의 가스라이팅이라며 악플을 다셨는데, 사실 제가 옳다구나 기회다 하고 그 파티에 참석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어차피 가지 말라고 얘기하는 순간 갈등이 생길 게 뻔하고, 제가 말려서 가지 않았을 때 분란이라도 생기면 성향상 책임이 온전히 저한테 돌아올 게 뻔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상대방이 얘기하는 거리감을 그대로 상대방에게 보여준 거예요.
“나는 우리가 더 서로의 개인적인 것에 관여할 수 있는 관계인 줄 알았는데, 네가 그렇지 않다면 난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 다만 둘에게 적용되는 잣대는 같아야 해.”
이렇게 제 생각이 옳다는 주장이 아니라, 상대방의 행동을 그대로 반영해서 적용했던 거예요.
여기까지 들으시면 이게 무슨 갈등을 잘 해결하는 거냐, 일을 더 키우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상황이 생기는 이유는 노골적으로 보복한다는 느낌을 줬기 때문이에요.
“너 오늘 거기에 간다고?”, “그럼 난 여기 갈게.” 이런 뉘앙스였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거예요.
그때 저는 이렇게 얘기했어요. “가서 술 마시고 문제 생길 수 있으니까 조심하고 잘 놀다 와.”, “나는 오늘 여기 초대받아서 잠깐 들렀다가 들어갈게. 중간중간 연락하자.”
이렇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상대방이 생각하는 거리가 우리 관계에 자연스러운 것처럼 표현한 거예요.
그리고 잠깐 뒤 여자친구가 알아서 그 약속에 가지 않게 되었다고 얘기했고, 저에게 클럽에 가지 않으면 안 되겠냐는 말을 꺼냈어요. 그렇게 서로의 가치관에 대한 얘기를 나눴고, 그 뒤부턴 그런 일이 없었어요.
이렇게 서로의 가치관 차이가 있는데 명쾌한 기준이 없을 때는, 먼저 상대방의 기준을 역이용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을 경험하게 만드는 게 효과적이에요.
사람에겐 내로남불의 기질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기준을 반대로 경험해야 비로소 깨닫는 경우가 많거든요. 대화를 통해 좁혀질 수 없는 문제는 행동을 통해 상대방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거예요.
갈등 해결의 꽃은 수용이에요.
여기까지 오늘 얘기를 알아봤는데요. 여러분, 사실 오늘 이렇게 말씀드렸지만 연인 갈등 해결의 꽃은 바로 “수용”이에요.
지금 당장은 “난 절대 저 사람의 저런 점을 용납할 수 없어” 이런 마음이 드시겠지만, 상대방이 아무리 고치려 해도 고치지 못하는 문제들은 우리가 포기해야 한다는 걸 받아들여야 해요.
나랑 아무리 약속을 하더라도, 상대방 스스로 의지를 다잡더라도, 사람에겐 고치기 어려운 악습이 반드시 남아요.
이게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고칠 마음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에요. 그 사람에게 한계가 있는 거예요.
너무 상대방을 얄미워하거나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속에 미움을 품지 마세요. 이런 갈등 상황의 미움이 쌓여서 평소 관계의 질이 떨어지고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공격적으로 변하면, 그 관계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들이 괴로워져요.
내려놓을 건 내려놓는 것이 결국 갈등의 완성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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