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던 사람이 여러분에게 갑작스럽게 헤어지자는 얘기를 꺼내요. 당황스러운 마음에 이별 사유를 물어보고, 다시는 상대방이 불만을 가졌던 행동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해요.
그런데 상대방은 냉정하고 단호하게 이렇게 얘기해요. “나는 더 이상 널 믿지 않아.”, “네가 앞으로 그러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아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대부분 똑같은 행동을 해요. 어떻게든 상대를 설득하려고 하죠. 내가 얼마나 이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왜 이제는 다른지, 왜 이제는 진짜인지.
그런데 설명을 하면 할수록 상대는 더 차가워져요.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데 상대는 여전히 나를 믿지 않아요.
“넌 왜 이제 와서야 그런 얘기들을 하는데?”
“지금은 이래도 여전히 넌 달라지지 않을 거야.”
“난 더 이상 너를 믿고 싶지 않아.”
이런 상황이 아마 여러분에겐 가장 당황스럽고,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상황일 거예요.
오늘은 이렇게 반복된 갈등으로 신뢰를 모두 잃은 단호한 상대 재회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말해드릴게요.
#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의 함정
사실 여러분이 겪는 이 상황은 원래부터 해결할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상대방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절대 이길 수가 없는 프레임에 갇혀버린 거예요.
상대가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건 이런 거죠. “앞으로 네가 미래에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증명해봐.” 그런데 이건 애당초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가 없는 질문이에요.
부존재의 증명이라는 게 있어요. 어떤 것이 “없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증명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개념이에요.
부존재의 증명의 유명한 예시가 러셀의 찻주전자 비유인데, 만약 제가 여러분에게 지구와 화성 사이에 도자기로 된 찻주전자가 떠다니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여러분은 그게 없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망원경으로 온 우주를 다 뒤져도, 저는 여러분에게 “그 찻잔은 너무 작기 때문에 현대의 기술로는 안 보이는 것뿐, 찻잔은 반드시 존재한다”라고 얘기하면 그만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모두 지구와 화성 사이에 찻주전자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그 주전자가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없다는 걸 증명 못 한다고 해서 반대로 찻잔이 있다는 게 사실이 되는 것도 아니에요.
우리는 이런 부존재의 증명과 유사한 상황을 일상에서도 다양하게 경험해요.
이미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검증이 끝난 약을 두고 “그 약에 부작용이 20년 뒤에도 없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느냐”, 과학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환경을 두고 “그런 환경이 30년 뒤에도 안전하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느냐”, 라식 수술이 50년 뒤에도 안전할 거라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
이런 것들은 지금 현재 시점에서는 증명할 수가 없는 얘기들이에요.
좀 더 와닿을 만한 예시로는, 여러분이 비종교인의 입장에서 나에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는 친구가 있다고 쳐요.
그런데 여러분이 생각하기엔 도무지 그 종교의 교리가 납득이 가지 않아서 “그것이 진실이라는 증거가 무엇이냐”라고 물었더니, 개인적 신앙이나 개인적 경험으로밖에 대답을 하지 못하는 친구가 “반대로 이게 거짓이라는 증거는 무엇이냐”라고 반문하는 거예요.
여기서 우리가 거짓이라는 증거를 대지 못한다고 해서 그 종교가 진실이 되지는 않아요. 여러분이 겪는 상황도 이것과 비슷한 거예요.
상대방이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건 “네가 앞으로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증명해봐”라는 거예요.
논리학을 좋아하시는 분들 중에서 불편해하실 수도 있으니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 상황은 엄밀히 따지면 부존재의 증명은 아니고 미래귀납의 오류예요.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으니 내일도 그럴 것이다, 내가 만난 남자 세 명이 모두 바람을 폈으니 모든 남자는 바람을 필 것이다, 이런 것과 같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인 거죠.
그런데 이런 미래는 증명할 수가 없기 때문에, 여러분이 앞으로의 모든 시간, 모든 상황에서 그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걸 지금 이 자리에서 증명해라, 이런 요구는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요구예요.
아무리 진심으로 반성하고,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여러분은 이 질문에 완벽하게 답할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이 느끼는 답답함은 애초에 답이 없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하고 있었던 거예요.
# 부존재의 증명을 요구하는 사람의 심리
그런데 이런 불가능한 증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과연 현재 내가 자신이 원하는 증명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를까요?
아니에요. 대다수는 자신의 증명 요구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고,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논리적으로 증명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이런 요구를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자신의 손해와 리스크를 줄이고 싶은 마음인 거예요.
예를 들어 회사에서 내가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인데 분란이 생겨서 이 회사를 떠나겠다고 말해요.
이때 회사에서 “절대 앞으로 네가 불만을 가질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라고 말해올 때, “내가 앞으로 그 상황이 일어나지 않을 걸 어떻게 믿냐”라고 말하는 상황은, 사실상 회사가 증명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그럼에도 이런 주장을 펼치는 이유는, 회사로부터 향후 더 좋은 대우를 받음으로써 내가 손해를 감수할 만한 이익을 만들거나, 향후 이어지는 상황에서 더 유리한 입장이 되려는 마음일 거예요.
즉 내가 걱정하는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은 있더라도, 그걸 보완할 만한 이익을 얻고 반대로 회사의 리스크를 키우고 싶은 마음인 거죠.
이별 상황에 대입해서 설명해볼게요. 입장을 바꿔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죠.
예를 들어 상대방이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몰래 나가서 술자리를 가졌다고 쳐요. 그래서 우리가 여러 차례 화도 내보고 부탁도 해봤는데도, 계속 상대방이 그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결국 또 우리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참다못한 우리가 결국 이별을 얘기했는데, 상대방이 또다시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전까진 내 문제가 별로 심각한 상황이라 느끼지 못했는데, 이렇게 이별 얘기까지 듣고 나니 정말 큰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이번엔 정말 다를 테니 기회를 달라.”
우리가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아마 상대방의 말을 무조건 믿고 넘어갈 수는 없을 거예요. 여기서 우리가 느끼는 심리는,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나에게만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내가 또다시 상대방을 믿고 기회를 줬다가 만약 상대방이 또다시 나를 배신한다면, 상대방은 어차피 지금 내가 얘기한 이별 상황으로 되돌아오는 것뿐이지만, 나는 또다시 배신감을 느끼고 감정 소모를 해야 하고 시간까지 써야 하는 입장이거든요.
즉 내가 상대방에게 기회를 준다면, 이득은 모두 상대방이 가져가는 반면 손해가 발생할 시 모든 손해는 내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렇다고 연인 사이에 “니 말을 믿지 못하겠으니 보증금 차원으로 천만 원을 나한테 입금해라” 이렇게 말할 수도 없거든요.
이게 지금 여러분이 느끼는 상대방의 심리와 완전히 똑같은 거예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이 상대방의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해서 “어떻게든 내가 미래에 그러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야겠다”라고 생각하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처가 사실상 없는 거예요.
그럼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뭘까요?
첫 번째, 불리한 논점에서 벗어나라.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지금 이 불리한 논리의 운동장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지금 상대방의 관점은 “손해의 관점”에서 여러분과의 관계를 해석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이 관계를 이어갔을 때 생기는 손해는 무엇인가?”, “만약 결과적으로 실패할 경우 생기는 내 시간과 감정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이런 관점으로 관계를 바라보다 보니, 상대방 입장에서 관계를 이어간다는 선택은 당연히 불합리한 선택으로 보일 수밖에 없어요.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건, 관계는 항상 손해의 관점과 이익의 관점이 공존한다는 거예요.
손해의 관점이란 “내가 이 상황에서 잃게 되는 게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고, 이익의 관점이란 “내가 이 상황에서 얻게 되는 게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춰진 태도예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어떤 사람과 연애를 시작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죠. 이때 “내가 이 사람을 만나서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지 않을까”, “돈을 너무 많이 써야 하지 않을까”, “나쁜 사람을 만나서 실패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상대방이 좋은 마음으로 좋은 얘기를 하더라도 나쁘게 들려요.
진심으로 나에게 호감을 표현하고 나를 칭찬하더라도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를 꼬시려고 이런 말을 하는구나”, “혹시 나를 어떻게 한번 해보려고 이러나” 이런 생각부터 떠오르게 되죠.
반대로 내가 이익의 관점으로 상대방을 바라본다면 같은 상황에서 “이 사람이 나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나도 이렇게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에게 다정하게 대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죠.
즉 같은 말을 듣더라도 내가 손해의 관점인지 이익의 관점인지에 따라 상대방의 행동이 다르게 보이는 거예요.
그럼 우리 상황에서 현재 상대방의 태도는 당연히 손해의 관점이겠죠? 그래서 우리가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상대방이 이런 손해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이익의 관점으로 이 상황을 다시 해석해보도록 만드는 거예요.
이 얘기가 좀 어렵게 느껴지신다면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정치권에서 한쪽이 A라는 정책을 주장하면 반대 진영에선 그 A에 대한 반론을 제기해요. 그런데 그 반론들 중엔 앞서 말한 것처럼 당장 증명할 수 없는 얘기들이 있거든요.
그럴 때 A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그 반론을 포기하고 반대로 A에 대한 이익을 얘기하기 시작해요. 어차피 완벽하게 반론할 수 없는 얘기들을 해봐야, 사람들이 듣기엔 이 정책이 완벽하지 않고 뭔가 위험하다는 공포심만 느끼거든요.
그래서 반대로 A에 대한 이익을 얘기하면서 사람들이 손해를 상대적으로 작게 여기게 만드는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로 이런 방식을 통해 상대방의 손해의 관점을 이익의 관점으로 바꿔줄 건데, 이걸 우리 입장에서 대놓고 “네가 나를 만남으로써 이런 이익들도 있지 않냐”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이런 식의 주장은 상대방 입장에선 “내가 제기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까 물타기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고, 오히려 상대방의 손해 심리를 더욱 자극하는 얘기가 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사용해야 할 방식은, 상대방의 주장에 반박 자체를 하지 않고 전제 관계에 대해 얘기하는 거예요.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에요.
“네 말대로 내 입장에선 쉽지 않은 일이라 한 번에 고쳐지지 않을 수도 있어. 모든 사람한테는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하게 되는 악습들이 있고, 그걸 고치려면 시간과 반복적인 실패 과정이 필요하다는 건 너도 이해는 하잖아.
그런데 내가 평소에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반대로 네가 나한테 어떤 사람인지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어. 나는 우리가 이런 문제가 있더라도 항상 네 마음이 아프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고, 힘든 시간들이 와도 그래도 우리 관계를 잘 지키려 해왔다고 생각해.
지금처럼 너를 속상하게 만든 일들도 있지만, 반대로 같이 즐겁고 힘든 일도 함께 있어서 위안이 됐던 기억도 많았을 거야.”
이렇게 상대방의 의견에 정면 반박을 하지 않고, 상대방 관점의 방향만 살짝 바꿔주는 거예요.
두 번째, 손해의 밸런스를 맞춰줘라.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딱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어요. “나 혼자 손해를 봐야 하는 상황은 죽어도 못 받아들이겠다.”
이건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로 느끼는 손해 심리 중 하나예요.
사람의 손해 심리에는 여러 오류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이익과 손해의 결과값이 같더라도 손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손실 회피 심리, 손해 그 자체보단 자신의 선택 때문에 손해를 봤다는 후회로 인한 책임 회피, 그리고 또 하나가 공정성 이론, 형평 이론이에요.
사람은 손해를 보는 것보다 혼자 손해를 보는 걸 더 싫어한다는 이론인데,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친구한테 주식을 추천받아서 매수했는데 그 주식이 폭락했어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난 이미 진작에 정리했는데?”라고 친구가 말한다면, 아마 여러분은 두 번 다시 그 친구를 보지 않으려고 할 거예요.
그런데 반대로 그 친구도 똑같이 손실을 보고 있다면 “아무리 얘가 추천을 했지만 결국 투자는 내가 한 거잖아”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거예요.
사실 나에게 발생한 손해는 친구의 손해가 있건 없건 동일하지만, 우리가 심리적으로 받아들이는 데미지는 전혀 다른 거예요.
즉 상대방이 저렇게 자신의 손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지금 이 상황에서 발생한 리스크를 모두 자신이 짊어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런 손해의 밸런스를 맞춰줘야 해요. 만약 이 관계가 실패하면 상대방만 손해를 보는 게 아니라 나도 막대한 손해를 본다는 사실을 인지시켜서, 상대방에게 심리적 보험을 하나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어떻게 이런 손해의 밸런스를 맞춰줄 수 있을까요? 가장 쉬운 방법은, 같은 상황이 발생해서 이별했을 때 내가 받을 데미지를 가시화해주는 거예요.
이런 형평성 문제에서 상대방이 느끼는 가장 큰 리스크는, 우리가 관계를 이어갔다가 안 되면 그 사이에 마음을 정리하고 아무렇지 않게 관계를 끝내고 힘들어하지 않는 상황이 상대방에겐 가장 억울한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미리 내가 감당해야 할 잠재적 리스크를 얘기함으로써 상대방의 손해 심리를 낮춰주는 거예요.
여기서 사용하면 좋은 방식이 바로 “내가 상대방과 꿈꿨던 미래”에 대해 얘기해주는 거예요. 내가 상대방과 원하던 미래가 있었는데, 만약 같은 이유로 이별을 하게 된다면 그게 나한테는 너무나도 큰 리스크라는 걸 표현하는 거예요.
“나는 너랑 있을 때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했어. 이 사람이랑은 오래 있고 싶다고. 같이 밥 먹고, 같이 힘든 거 버티고, 나이 들어서도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게 나한테는 이때까지 너랑 힘든 시간이 와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었어.
근데 우리가 이렇게 되면 그 모든 게 다 사라지는 거고, 나한텐 꼭 이루고 싶던 꿈 하나가 사라지는 거야. 너도 상처받을까 봐 두렵겠지만 나도 마찬가지야. 내 인생에서 꼭 이루고 싶던 목표를 잃는 이런 상황은 겪고 싶지가 않아.”
이렇게 상대방 입장에서도 혼자 손해를 보는 게 아니고, 나도 상대방 못지않게 큰 손해를 보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세요.
세 번째, 내 행동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여줘라.
여기까지 잘 따라오셨다면 “그럼 내 잘못에 대해선 아예 얘기할 필요가 없냐” 이런 생각이 드실 텐데, 물론 이런 현실적인 측면도 아예 얘기하지 않을 수는 없어요.
다만 앞선 얘기들로 상대방이 처음 주장했던 “네가 앞으로 미래에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거란 걸 증명해봐라”라는 프레임에서는 벗어나야, “아직 나는 너를 신뢰할 수 없어” 정도의 수준으로 문제의 무게감이 내려오는 거예요.
결국 우리는 상대방에게 내 행동의 해결책과 대안을 얘기해야 하고, 상대방도 이 정도면 믿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는 해야 결정적으로 다시 재회를 선택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여러분이 얘기하는 내용 대부분이 너무 추상적이거나 해결책이 완벽하지가 않아요.
예를 들어서 내가 불안형 기질이 너무 강한 사람이라 상대방에게 지속적으로 집착하고 캐묻고 트집을 잡으며 내 불안함을 표현해왔다고 가정해요.
그럼 여러분이 하시는 얘기가 “내가 생각보다 너무 불안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앞으로는 너한테 의존하지 않도록 내 생활을 가꿔나가볼 생각이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취미도 해보면서 혼자 독립적으로 생활해보겠다” 이런 수준의 얘기들을 하거든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해결책이 틀렸다는 건 아니에요. 실제로 불안형이 의존을 개선하기 위해선 독립적 활동의 총량이 늘어나야 한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해결책이에요.
그런데 이런 말은 부족해도 너무 부족해요. 사실 상대방 입장에선 내가 불안형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물론 근본적인 문제가 내가 불안감을 과하게 느껴서 생기는 문제란 걸 이해하지만, 상대방 입장에선 내가 불안하든 불안하지 않든 자기를 피로하게 만들지 않길 바라는 거거든요.
마치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앞으론 열심히 노력해서 공부를 해볼 생각이다. 잠도 줄여가며 규칙적으로 플랜을 짜서 공부를 할 거다” 이렇게 말하는 것과 비슷한 거예요.
기특하고 응원은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이 말에는 구체성이 전혀 없어요. 어떤 공부를 어떤 방식으로 어떤 단계별 목표를 가지고 할 건지, 스스로가 가진 나쁜 학습 습관을 어떻게 교정할 건지, 핵심적인 내용은 쏙 빠지고 “앞으로 노력해보겠다”, “내가 정말 바뀔 의지가 강하다”라는 말을 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상대방이 과거 다른 불안형 연인으로부터 들어본 경험이 있거나, 내가 의지력이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여전히 상대방은 나를 신뢰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어떻게 상대방에게 신뢰를 줘야 할까요? 신뢰는 우리 행동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정확히 예측이 가능할 때 생기는 거예요.
상대방이 여러분의 말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하는 말이 구체적인 행동을 지칭하는 게 아니거나 본질과는 너무 멀어져 있는 얘기이기 때문이에요.
“앞으로 노력하겠다”, “최선을 다하겠다”, “나 혼자 감정 컨트롤을 해보겠다.” 이런 표현들은 전부 구체적인 행동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가짐이나 의지 등을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에, 상대방 입장에선 그다음 상황이 어떻게 펼쳐질지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얘기들이 아니에요.
또는 “내가 감정이 불안해지면 30분 정도 생각할 시간을 가지겠다”, “일단 대화를 멈추고 혼자 감정을 정리하겠다”, “나 자신을 돌아보려 한다.” 이런 말도 특정 행동이긴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내가 어떤 사고 과정을 가져갈 건지, 그게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에 대해선 불확실한 얘기예요.
그래서 우리가 상대방에게 내 행동의 해결책, 대안을 얘기할 때는 훨씬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얘기들이 주를 이뤄야 해요.
만약 방금 전 예시처럼 내가 불안형이라 불안감이 올라올 때마다 상대방을 피로하게 만드는 행동을 해왔다면, 이렇게 말해보는 거예요.
“나는 그동안 불안함이 느껴지면 항상 나쁜 상상에 빠져들었고, 그럴 때마다 너한테 확인하려고 했던 것 같아. 그런데 이제는 가장 먼저 나쁜 상상에 빠지지 않으려고 해. 그럴 때마다 평소에 네가 나한테 얼마나 신뢰를 주는 사람인지, 얼마나 다정한 사람인지를 생각하며 신뢰하려 할 거야.
또 내 불안감을 항상 확인을 통해 해결하려 하지 않을 거야. 한번 확인을 하기 시작하면 그 불안감이 생길 때마다 확인을 해야 마음이 편해진다는 사실을 알았거든. 혼자 고민하는 것보단 한번 확인하는 게 당장 속이 시원하다 보니 계속 그렇게 되는 거더라고.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뭔가를 확인함으로써 불안함을 해결하지 않고,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보고 적응하려고 해. 불안감을 느낄 상황도 있겠지만, 또 그 상황이 지나가고 관계가 안정되는 경험이 반복되면 더 이상 확인을 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마음에서 벗어날 것 같아. 이렇게 내 마음의 근력을 길러보려고 해.”
이렇게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거예요.
해결책은 추상적이거나 너무 범위가 넓게 표현되면 효과를 보기 어려워요. 상대방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만을 가졌던 핵심 상황으로 좁혀두고, 그 상황을 원포인트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상대방 입장에서도 문제가 간결해지고 나를 다시 한번 검증해볼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네 번째, 결론을 정리하고 판단권을 상대방에게 돌려줘라.
이렇게 대부분 여러분이 해야 할 얘기들은 정리가 됐어요. 그런데 말은 정리가 됐는데 문제가 하나 있어요. 바로 우리가 이런 말을 하는 태도와 뉘앙스예요.
사람은 타인의 얘기를 들을 때, 그 사람이 하는 말, 텍스트의 의미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아요.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내가 지금 화를 내는 건 아니야”라고 얘기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 사람의 표정이나 억양을 듣고 지금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또 친구가 우리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서 “네가 돈을 빌려주기 힘들면 안 빌려줘도 괜찮다”라고 말하면서 눈빛과 얼굴에서 간절한 모습이 보인다면, 그것 또한 우리에겐 딱 잘라 거절하기 어려운 이유가 될 거예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는 이런 얘기들에서, 우리가 절대 상대방과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고 상대방은 이별을 얘기했지만 나는 그걸 인정하지 않은 것 같은 모습이라면, 오늘 정리한 얘기들은 효과를 보기 어려울 거예요.
이유는 간단해요. 내가 이별을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상대방에겐 리스크가 되기 때문이에요.
이게 꼭 말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 은근슬쩍 재회를 전제하는 얘기처럼 분위기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느낌이 들 때, 상대방은 자신이 이 상황의 선택권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그때부터는 더 단호하게 이별을 얘기하게 돼요.
여러분도 이런 경험을 해보셨을 텐데, 상대방이 이별 얘기를 하고 내가 설득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갑자기 대화를 멈추고 나를 밀어내는 상황들을 겪어보셨을 거예요.
이런 상황은 대부분 대화가 흘러가다 보니, 뭔가 상대방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가는 느낌이 들 때, 가장 안정적으로 그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이 대화를 멈추고 밀어내는 선택이거든요.
우리가 마케팅 전화를 받았는데 처음엔 적당히 밀어냈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영업 사원이 분위기를 조장하며 계속 전화를 이어가려 하면, 말없이 전화를 끊어버리거나 단호하게 거절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예요.
그래서 오늘 정리한 얘기들을 다 했다면, 마지막엔 반드시 판단권을 상대방에게 돌려줘야 해요. 내가 할 말은 다 했고 이제 결정은 상대방에게 있다는 걸 명확하게 해주는 거예요.
예를 들면 이렇게 말해보는 거예요.
“나는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다 한 것 같아. 더 이상 너를 설득하려는 게 아니야.
네가 그동안 상처받은 것도 알고, 다시 믿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알아. 근데 나는 네가 이 관계를 어떻게 판단하든 그 결정을 존중할 거야.
억지로 붙잡고 싶지 않아. 네가 스스로 납득이 돼서 선택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이렇게 상대방이 자신의 선택권에 대한 안정감이 생겨야, 우리가 하는 얘기들을 왜곡 없이 다시 들여다볼 이유가 생기는 거예요.
매달리는 사람의 말은 어떻게든 나를 설득하려고 있는 얘기 없는 얘기까지 다 하는 필사적인 말로 들리지만, 담담하게 결정을 맡기는 사람의 말은 의도가 투명한 진심으로 들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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